이번 여름, 음악극 <콜링>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솔직히 바로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 내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고, 한 달 남짓을 앞두고 프로젝트에 합류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결국 수락하게 된 이유는, 내 자리와 역할이 분명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또 달랐다. 누군가는 내가 미디어 제작을 위해 왔다고 생각했고, 다른 누군가는 연출적 기반을 세워주길 기대했다. 이미 <콜링> 팀에는 탄탄한 기획과 연출진이 있었기에, 오히려 나의 자리가 애매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붙잡은 질문은 하나였다.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역할은 무엇일까?”

수원성교회 방송실 현장. ⓒ마스터브릿지
공연이 열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방송실에 배치되었다. 문제는 준비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는 것. 기술자분들을 실제로 만난 것도 공연 하루 전이었고, 그분들은 대본이나 흐름을 미리 전달받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는 단 2~3시간 안에 한 시간짜리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이미 제작진의 큰 그림은 분명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내가 배운 첫걸음은 단순하다. 그 공간에 평안을 세우는 것. 조급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그 흐름을 맡기는 것이다. 내가 분위기를 억지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먼저 기도하고, 상황을 살피며, 각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지켜본다. 그러고 나서 가능한 범위를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다.

방송실에서 김은총 대표의 모습. ⓒ마스터브릿지
몇 달 동안 준비해온 제작진은 자신들이 그려온 그림을 실현하길 원했다. 하지만 열심만으로는 현장이 금세 삭막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우선순위를 세웠다. 우리의 필요보다 현장의 가장 중요한 필요를 먼저 듣고 반영하는 것.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 아직 신뢰와 공감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욕심을 내는 건 결국 조급함과 실망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했던 역할은 단순했다. 1층 제작진과 방송실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것. 기술적 요청이 올라오면 방송실의 상황을 차분히 설명하고, 가능한 선에서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는지 공유했다.
사실 ‘제대로 된’ 리허설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끝까지 지켜야 했던 건 관계였다. 이 일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그래서 “이건 꼭 필요하다”는 요청을 분명히 하되, 어디까지 가능한지 확인하고 그만큼만 진행했다.

방송실에서 바라본 공연 현장. ⓒ마스터브릿지
공연 당일, 상황은 전날보다 훨씬 나아졌다. 조명 컨디션도 좋아졌고, 함께했던 선생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분에게 마음을 더 부어주셨다는 생각이 들며 감사했다. 극이 시작된 뒤에는 조명 오퍼레이션과 장면 전환 신호를 주고받으며 공연을 함께 완성해갔다. 50분의 런타임 동안, 우리는 좋은 협업을 만들어냈다.

공연 후, 함께 합을 맞춘 기술자 분들과. ⓒ마스터브릿지
돌아보면 내가 붙잡은 고민은 늘 같다. 보이는 자리에서 일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평안의 브릿지를 놓는 것. 요즘 들어 더욱 생각한다. 이건 성령님이 하시는 영역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 학생들에게도, 이 경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